산의 침묵을 이야기하다.

산의 침묵을 이야기하다.

★쑤바™★ 15 6,854


* * * * * * * *


그것은 벽이었다, 차갑고 황홀한.
.
.
피잉, 하는 듯한 낮고 날카로운 금속성,
혹은 단번에 허공을 두 동강이 내는 가죽 채찍 소리.


* * * * * * * *


살다보면 누구나 라인홀트 매스너의 말대로
'무덤과 정상 사이'가 '종이 한 장'의 두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름답고 온화한 '개그'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걸
현우가 이해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뽕' 맞은 '연놈'들은 무조건 '또라이'라고만 생각하는
단순포자 생물들이야 뭐, 이 기록을 읽을 필요도 없겠지만.


* * * * * * * *


밤 3시라서 캄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별빛 때문이다.
누군가가 스스로 빛을 내는 안개꽃 수만 송이를
허공에 확 흩뿌려놓은 듯 하다.
그 누군가는 아마 지구와 화성에 각각 한 발씩 벌려 딛고 서서
아침마다 '다리찢기' 스트레칭을 할 만큼
체격이 장대할 것이다.


* * * * * * * *


나는 잠의 수렁 속으로 속수무책 끌려 내려가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나날이 그 사랑을 상실해가는 '삭막한 과정일 뿐' 이라는
신혜의 말에 간신히 동의한다.
사랑을 간직하려면 그걸 버리는 수 밖에....


* * * * * * * *


정상에 무엇이 있겠는가.
모든 정상은 허공을 이길 수 없다던 형의 말이 머릿속을 가로지른다.


* * * * * * * *


소주는 맑아서 좋아, 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 영혼은 소주와 달랐다.
소주는 독을 품고 맑은데,
아버지는 물처럼 맑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약하다는 뜻이었고, 약한것은 명백히 유죄였다.


* * * * * * * *


날씨까지 어쩌면 이렇게 '싸가지'없단 말인가.
형에게 하는 욕인지, 아버지에게 하는 욕인지,
촐라체에게 하는 욕인지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촐라체에 왔는데, 촐라체가 없다.
평생 나를 찾아 떠돌았는데
죽을때 내가 없다는 걸 확인한 느낌이 아마도 이럴것이다.
임종 직전, 아버지도 그럼 이런 '싸가지'없는
촐라체 정상에 왔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넌.....누구냐......라고 아버지가 말하고 있다.


* * * * * * * *


밤은 이래서 좋아.
불빛과 불빛 사이에 아무런 절망적인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것, 그 따뜻한 착각.


* * * * * * * *



- 박범신 소설 <촐라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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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하는건...사람이다.


말이란건 그렇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사고하고...
안면에 달린 붉은입으로 그 사고의 합류를 내뱉는다.

때론 타인을 설득시키려
피어리게 토해지기도 하고..

자신을 설득시키려...
본인한테만 통할 변명을,
안쓰러울 정도로 툭툭 버린다.



오늘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건 변명도 아닌 설명이고....
가끔 설득시키려고도 하는데,

실상, 몇마디 말로도 가능한 설득을 위해...
설득을 위한 설명이 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구체적으로 나를 설명하려고 한다.
나를 이해시키는게 아니라.
그냥 나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건 가끔...
의무감 같은 피로로 나에게 누적될 때가 있는데,
그 피로를 씻어내려, 또 한차례 혀를 굴린다.


나는 가끔..아니 자주...

실상은...
내 외로움이나 내 고독의 맨얼굴이 두려워서...
"이야기로 내 몸뚱어리를 분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문득..
그런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싫으면서도...
반복적으로 분칠의 되새김질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정확하게 지적당한 지점이..
쿡 하고 박혀서,,
선연하게 핏방울이 첨끝에 아롱졌다.



침묵을 좋아하는건.......산이다.

산은....
침묵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의사를 표현한다.


칼날처럼 예리하고 날카롭고 사납고 흉폭한것도..
장엄하고 웅장하고 꿋꿋하고 야무지고 믿음직한것도..
다정하고 여리고 속살 부드럽고 빨간것도...

산은...
침묵함으로써 다 표현해 내고...

산의 침묵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시 입으로 뱉어낸다.


그 경이로운 침묵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인들만의 이야기로 각자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산에의 표현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이야기로 말함에 다름아니다.



오늘..난,,

산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납고 흉포한 산이,,
날카롭고 차가운 산이,,

새벽 공기 가르고 내 곁에 앉아,
거칠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지금 이렇게...
산의 침묵을....이야기하고 있다.



너는...

사납고 매섭고 흉포하지만..
그렇지만,


촐라체, 너는..
다정다감 했었노라고.






소설 <촐라체>는 등반소설이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읽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지도 모른다.

산에대한 경이로움은 알지만,
침묵에 대해선 짐짓 모른체 하고 있던 내가,

굳이 이렇게 글까지 남기는것은.

묘하게도 맞아떨어지는...
오늘 내가 들었던 "이야기하기" 와,,
오늘 드디어 다 읽은 "촐라체의 침묵"이...

반대편에서 서로 끌어당기는...
로프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비록,

낯선 등반용어로 인해서...
책 뒷편의 등반용어 해설부분을 번갈아 들춰가며...

평소 10줄도 넘게 읽을 시간에...
겨우 1~2줄 읽어 내려가며...
뜻을 헤아리려고 애쓰다보니...

더딘 속도로 인해....며칠만에야 끝을 본 책이지만,,


차가운 촐라체의....
침묵같은 뜨거움을....

그 다정다감을..."이야기"하지 않고선...
못배길것 같아서..

새벽의 문을 두드렸다고나 할까....






Comments

초롱소녀
나도 등산은 별로인데...처음엔 잘 올라갔다가...낭중엔 헉헉거리는거 별로임.ㅋㅋ 
★쑤바™★
오케바리...그부분 말한것이었군..+_+;;
책부분이 아니라..쑤바의 글 부분..후후~
그걸말한 것이었어~!!

이제 글자색 연한것은 자제 하겠음.
모니터에 따라서 안보일수도 있겠다 싶네요..-_-;; 
Petit_쁘띠^^
ㅎㅎ 침묵에 관한 글이 나타났다.. ㅎㅎㅎ 좋아좋아.. 당케~ 쑤바양 
★쑤바™★
어라....안보여요??
산을 좋아하시는 석실장님께서는..
좋아하실 듯한 책인데...+_+;;;;;
글자색 바꿀까요? 
Petit_쁘띠^^
<모든 정상은 허공을 이길 수 없다......>,
<소주는 독을 품고 맑은데.. 아버지는 물처럼 맑은 사람이었다....>
이 부분 맘에 드넹.. ㅎ
근데.. 어제 잠들기전에 본 글은 본문 삽입이 더 길었었는데.. 없어졌다.. 거기에 맘에 와닿는 글귀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려 들어왔는데.. 아쉽넹 ㅎㅎㅎ 
KENWOOD
머꼬,,, 
석두
내 모니터에서는 글이 안보인다. 제발 색글자 사용하지 말자 응
리플만 보이네 ㅉㅉ 
smc^.^~
글씨 아미부분이 안보여..침묵중-.- 
★쑤바™★
아침오라방...
나 원래 다정한거 알지?ㅋㅋ

콸아...
나도 산이름인지도 모르고..
제목이 신기해서 산 책이야...순전히..-_-;;;

하루냥..
새벽에 읽는 책이...제일 가슴으로 들어와..

기리님..
내 다리는 지구에서 화성까지 안닿아요..ㅋㅋ
지구에서 쑤바라바별도 못가고있는디...지금...-,.-;; 
giri
음...슈바군...말나온김에 다리 쭈~욱 찟어 스키니진입어........효 
하루
쑤바님 독서 많이 하시네요~+ㅠ +부럽,
전 앉아서 책읽을라해도 산만해서 가만히못있는지라;;;;ㅋㅋ 
kuhal
- 박범신 소설 <촐라체> 중에서 -..
나.. 왜 이거 '졸라쎄' 로 봤을까.. 존나세는.. 귀여니소설 남자 주인공아녀.. =ㅅ=..   
아침이오면
참.. ...쑤바는 역시 글 솜씨가 좋아 ^^ 
★쑤바™★
글자 색상...수정했삼.ㅋㅋ

헛..쁘띠언니.
저 날카로운 눈매 어찌할꼬,..ㅋㅋㅋ
글 수정한거 그 짧은 사이에 눈치챘었다니..+_+;;

언니...
그 글귀 찾으려면 또 책을 찾아봐야해..ㅋㅋㅋㅋㅋ
내가 구절을 전부 외우고 다니진 않거든..=,.=;; 
아침이오면
음.. 새벽에 글 쓰냐고 바쁜게 이거 때문이였구나...
메신져 씹지 말고 나도 다정다감하게 대해줘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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